출연연 평가에 ‘연구자 정보공개’ 지표 도입…현장 반발 확산

[서울이코노미뉴스 박희만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올해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평가체제를 개편하면서 새로 도입한 일부 평가 지표를 둘러싸고 현장에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과기연전노조)은 최근 과기정통부가 출연연 기관평가 항목에 ‘연구자 정보공개 실적’을 추가한 것과 관련해 “출연연 연구자를 인력 시장의 매물로 전락시키는 반국가적 평가 지표”라며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기존에 기관평가를 3년, 연구사업평가를 6년 주기로 진행하던 출연연 평가 방식을 올해부터 1년 주기로 통합·간소화하는 개편을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평가 지표 전반을 손질했으며, 연구원들이 수행 중인 연구 주제와 내용을 기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하는 항목이 새롭게 포함됐다.

해당 지표는 대학처럼 연구 정보를 공개해 연구 협력과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로, 박인규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주도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대학은 연구실 단위로 연구 내용이 공개되지만 출연연은 외부에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알기 어렵다”면서 “연구 그룹별로 어떤 주제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지 최소한의 정보는 공유돼야 한다는 점을 평가에서 살펴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기연전노조는 연구 정보 공개의 취지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출연연 연구 현장의 특수성과 위험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경영평가라는 압박 수단으로 이를 강제하는 방식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조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와 일부 출연연 기관장들이 연구자 의견 수렴 없이 지표 도입을 수용했다며, 과거 정부의 일방적 행정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또 연구자 정보 공개가 국가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을 촉진할 수 있고, 네트워킹을 사실상 강제함으로써 연구과제중심제도(PBS) 폐지 취지와 배치되는 ‘개별 연구’ 또는 ‘각자도생식 과제 수주’를 부추길 수 있다며 정책적 모순을 제기했다.

노조는 연구 현장의 우려를 전달하지 않은 NST와 출연연 기관장들의 책임을 묻고, 국회 차원의 전면적인 조사도 요구했다.

국회에서도 관련 설명을 듣기 위해 이날 과기정통부 관계자를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연전노조 관계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해야 하는 사안인데, 별다른 논의 없이 수용돼 밀어붙여진 측면이 있다”면서 “조합원의 70~80%가 연구직임에도 불구하고 의견 수렴 과정 자체를 몰랐다는 반응이 많다”고 말했다.

출연연 현장에서는 올해 기관평가 시스템이 대폭 개편되면서 다수의 지표가 기존과 다른 방향으로 변경돼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기관평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진 ‘아웃리치(대외홍보)’ 지표를 두고, 별도의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연구자 개인 연구비를 활용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혼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과기정통부는 평가 주기를 1년으로 줄이면서 행정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는 체감도가 낮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제출 분량은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3년 단위 평가에서 작성하던 자료를 우선 만든 뒤 기관 차원에서 줄여 제출하는 방식”이라면서 “현장에서 체감하는 업무량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