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정진교 기자] 달러·원 환율이 1470원대를 넘나드는 가운데 고환율이 한국 경제에 광범위한 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과거 국제통화기금(IMF)사태 당시의 외환위기 수준에 육박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국내 산업 전반이 원자재·수입 비용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원 환율은 지난 21일 기준 전일 대비 7.7원 오른 1475.6원으로 주간 거래를 마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 발표 직후였던 지난 4월 9일(1472원) 이후 7개월여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정유·항공·철강 등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업종은 원유, 유류비, 철강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압박을 받고 있으며, 면세점과 패션, 식품업계 등도 수입 비용 증가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기업들의 수익성 압박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 원자재 및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달러 결제 비중이 높은 정유, 철강, 항공, 식품 산업 등이 원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다. 이는 생산자 물가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
정유업계는 연간 10억 배럴 이상의 원유를 전량 해외에서 달러로 도입하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원유 도입비 증가로 직결된다.
SK이노베이션이 공개한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법인세 차감 전 순이익이 약 1544억 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업계의 경우 타격이 크다. 유류비와 정비비 등 주요 비용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은 직접적인 부담으로 이어진다.
달러 결제 비중 큰 업종, 원자재·수입 비용 급등에 압박…산업계, 환헤지 활용
다만 항공사들은 통화·이자율 스와프 계약과 같은 헤지 전략을 활용해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평가 손실을 일부 상쇄, 내년 사업계획 수립 시 환율 변동 대응을 강화할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철광석과 원료탄 등 핵심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 고환율 영향이 원가에 바로 반영된다. 여기에 미국의 50% 부품관세 부담과 시황 부진까지 맞물리면서 부담이 이중으로 커지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특히 면세점의 타격이 크다. 면세업계에 따르면 환율이 오르면 해외 대비 국내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다. 이른바 '로컬비 가격 메리트'가 사라지면서 매출 감소로 직결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면세점은 여행 수요 변화가 매출에 즉각 반영되는 만큼 민감도가 가장 높다. 면세점 내부에서는 기준환율을 적용해 원가율을 산정하는데, 환율이 상승하면 이 기준환율도 함께 오른다.
달러로 직결되는 수입 브랜드는 물론, 국산 브랜드(토산품)의 경우에도 매입 원가 상승폭이 판매가에 반영되면서 소비자 가격 부담이 커지고, 판매량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패션업계도 원단과 부자재 등 수입 비중이 높아 환율 상승 시 원가 부담이 누적되는 구조다. 특히 수입브랜드 중심의 업체들은 영향을 크게 받는다..
식품업계는 고환율이 빠르게 원가에 반영되는 업종으로 꼽힌다. 국산 원재료 사용 비중이 31.8% 수준에 그쳐 밀, 대두, 옥수수, 원당 등 대부분을 해외에서 달러로 조달하기 때문이다.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 가계의 실질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심리 위축
CJ제일제당은 사업보고서를 통해 달러·원 환율이 10% 상승할 경우 세후 이익이 13억 원 감소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환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가면서 기업들은 원자재 수입 비용 증가로 영업 이익이 감소하고 있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내년도 경영 계획을 전면 재검토, 환헤지 전략 등을 통해 리스크 완화에 주력하고 있으나, 불확실성이 커져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 상승은 수출 기업에 유리할 수 있지만, 현재는 수입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한 원가 부담이 더 커서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일부 고부가가치 반도체 분야는 수출 호조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은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로 이어져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이는 국내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특히 면세점 등 수입품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에 취약하여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며, 환율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단기 계약으로 전환하는 등의 대응책을 강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행과 정부는 환율 안정화 대책을 모색하며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지만, 환율의 향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전문가들은 고환율 추세가 단기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변화(미국 금리 인하 기대 약화, 해외 투자 증가 등)에 기인한 측면이 있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