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박희만 기자] 두산그룹이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초소재 영역으로 본격 진출한다.
세계 3위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 인수를 추진하며, 에너지·기계 중심의 전통 제조 그룹에서 첨단 반도체·소재 기업으로의 사업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兆) 단위 자금이 투입되는 이번 거래는 두산의 중장기 성장전략을 가늠할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두산은 17일 SK㈜가 보유한 SK실트론 경영권 지분에 대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공시했다.
매각대상은 SK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로, 시장에서는 SK실트론의 기업가치를 5조원 이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인수규모는 약 3조~4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된다.
두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지분 29.4%를 제외한 SK측 지분전량을 인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현장실사와 계약조건 협의를 거쳐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산은 최근 경북 구미에 위치한 SK실트론 본사와 생산시설에 대한 실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SK실트론, 반도체 웨이퍼 제조 국내 유일 전문기업
SK실트론은 반도체 칩 제조의 핵심 기초소재인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국내 유일의 전문기업이다.
12인치 웨이퍼 기준 글로벌 시장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가리지 않고 주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지난 2017년 SK그룹 편입이후 한 차례도 적자를 내지 않는 등 안정적인 실적을 이어왔으며, 높은 기술장벽을 보유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인수 추진은 단발성 투자가 아니라, 두산이 수년간 진행해 온 사업재편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두산은 지난 2020년 구조조정 이후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며 스마트머신, 클린에너지, 반도체·첨단소재를 핵심축으로 설정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는 후공정 테스트 국내 1위 업체인 두산테스나와 엔지온을 잇달아 인수하며 관련역량을 축적해 왔다.
SK실트론 인수가 성사될 경우, 두산은 반도체 소재부터 후공정 테스트까지 아우르는 사업구조를 갖추게 된다.
웨이퍼 생산을 담당하는 SK실트론을 비롯해 반도체 기판소재와 테스트 분야까지 반도체 제조공정 전반에 걸친 전·후방 사업이 그룹내에 포진하는 셈이다.
◇실트론-두산전자BG-두산테스나 ‘삼각편대’ 구상
두산은 2022년 두산테스나 인수를 통해 반도체 사업에 본격 진입했다.
두산테스나는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분야에 특화된 기업이다. 웨이퍼 테스트와 패키징 테스트 등 시스템 반도체 후공정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두산 전자BG는 반도체 기판용 핵심소재인 동박적층판(CCL)을 생산한다. CCL은 인쇄회로기판(PCB)의 주요 소재로, 스마트폰과 통신장비 뿐아니라 서버와 AI 반도체 패키지 등 고성능 전자기기에 폭넓게 활용되며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두산 전자BG의 CCL은 PCB 업체를 거쳐 엔비디아에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블랙웰 GB300용 CCL 품질인증을 통과해 독점공급 체제를 구축할 것이란 전망이다.
내년 엔비디아향 매출은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되며, 아마존 등 글로벌 고객사도 지속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SK실트론까지 편입될 경우,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서 두산의 사업영역은 크게 확대된다. 이에 그룹차원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가격 협상력과 시장지위도 강화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기술적 시너지 가능성도 주목된다. 두산은 고정밀 기계가공과 공정 자동화, 플랜트·발전 분야에서 오랜 기간 축적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은 웨이퍼 제조공정의 설비 고도화와 생산효율 개선에 활용될 수 있다. 니아가 디지털 전환과 스마트팩토리 전략이 결합될 경우 품질관리와 공정 안정성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강화된다.
◇‘2007년 빅딜’ 이어 두 번째 대규모 구조전환
두산은 과거 대형인수를 통해 그룹 체질을 바꾼 경험이 있다.
지난 2007년 미국 건설기계업체 밥캣을 인수하며 소비재 중심 기업에서 기계·중공업 중심 그룹으로 전환했다.
SK실트론 인수추진은 그 이후 두 번째 대규모 사업구조 전환 시도다. 반도체와 첨단소재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는 계기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번 거래는 SK그룹의 사업재편 전략과도 맞물린다.
SK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SK실트론 매각을 추진해 왔다.
웨이퍼 등 소재분야는 직접 보유하기보다 협력구조를 통해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국내외 사모펀드가 인수후보로 거론됐으나, 가격 이견 등으로 협상이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두산이 지난 10월 인수검토 사실을 공식화하면서 협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양측은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최종 인수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에 본격 돌입할 전망이다.
SK그룹은 매각대금을 핵심사업 투자와 재무구조 개선에 활용할 계획이다.
사업 전반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SK실트론은 그동안 그룹내 반도체 계열사와의 거래비중이 부각돼 왔는데, 인수 이후에는 고객구조와 사업전략에 일정 부분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AI 확산에 따라 글로벌 웨이퍼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소유구조 변화가 향후 사업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