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한지훈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15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연초 원·달러 환율이 다시 올라 1,500원선에 근접한 가운데, 금리까지 낮추면 원화가치가 더 떨어져 환율이 치솟을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한 고환율의 영향으로 수입물가가 들썩이면서 안정목표(2%)를 웃도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정부 대책 등에도 불구하고 계속 오르는 서울 집값도 금리 동결의 이유로 작용했다.
금통위는 2024년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낮추면서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쪽으로 틀었고, 바로 다음 달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 연속 인하를 단행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도 네차례 회의 중 2·5월 두차례 인하로 완화기조를 이어갔다. 건설·소비 등 내수 부진과 미국 관세영향 등에 경제성장률이 0%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자, 통화정책의 초점을 경기부양에 맞춘 결과다.
하지만 금통위는 지난해 하반기 들어 인하행렬을 멈추고 7·8·10·11월 잇달아 금리를 묶었고, 새해 첫 회의까지 5연속 동결을 결정했다.
지난해 7월10일 이후 다음 달 회의(2월26일) 전까지 최소 약 7개월간 금리가 2.5%로 고정된 셈이다.
◇환율 1,500원 넘봐…금리 낮추면 환율 뛰어
이번 금리 동결의 중요한 배경 중 하나는 불안한 원·달러 환율이다.
원론적으로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3.50∼3.75%)을 크게 밑돌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1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 주간(낮)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또 3.8원 올라 1,477.5원에 이르렀다.
환율은 지난해 12월22∼23일 이틀 연속 1,480원을 웃돌아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하고, 국민연금도 환 헤지(위험 분산)에 나서면서 1,440원대까지 급락했다.
새해 들어 '서학개미' 등의 해외주식 투자가 다시 늘고,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팔면서 10일 연속 뛰어 다시 1,500원을 넘보고 있다.
이날 "최근 원화약세가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맞지 않는다"며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구두 개입하는 이례적 상황이 벌어졌다.
국내 외환시장에서 환율은 일단 1,460원대로 떨어졌지만, 굳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 원화가치 절하를 부추길 이유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이날 금통위 회의에 앞서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율이 가장 큰 문제로, 지금 시점에서 금리를 낮추면 환율이 다시 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수입물가→소비자물가 상승 차단
환율과 함께 계속 오르는 소비자물가 추세도 금리동결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117.57·2020년=100)는 1년 전보다 2.3% 올라 9월(2.1%)·10월(2.4%)·11월(2.4%)에 이어 넉 달 연속 2%대 상승률을 유지했다.
특히 석유류(6.1%)·수입 쇠고기(8.0%) 등의 상승폭이 컸는데, 높은 환율의 영향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동결에 앞서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은 "환율이 여전히 높고, 이 환율 때문에 높아진 수입물가의 영향 등으로 물가가 아직 안잡혔다고 보는 금통위원이 다수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지난해 10·15 등 정부 부동산 대책과 은행권 가계대출 총량관리 등의 영향으로 수도권 집값 오름세나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주춤하고 있다.
그래도, 한은 입장에서는 금리를 일단 현 수준에서 유지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월 첫째 주(5일 조사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는 직전 주보다 0.18% 올랐다. 지난해 2월 첫째 주 이후 48주 연속 상승세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한은은 반도체 등 수출호조와 내수회복 전망을 근거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잠재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인 1.8%로 올린 바 있다.
올해 상반기 정도까지는 한은이 '경기부양용 금리인하' 압박에서 벗어나 경제·금융 지표를 확인할 여유가 생겼다.
다만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회복 정도에 따라 금리인하 필요성이 대두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조 소장은 "올해 성장률 반등의 상당부분이 기저효과 때문인데, 반도체가 계속 엄청난 호조를 이어가지 못하면 하반기부터 '경기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금리인하 여론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 경우 3분기 정도 한은이 올해 한차례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이미 한은의 금리인하 사이클(주기)이 끝났다는 진단도 적지 않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이 연내 지속적으로 동결기조를 유지하다가, 하반기 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 격차가 좁혀지면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적)으로 변하면서 인상 시그널(신호)을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올해 경기회복이 일부 산업·계층에 편중된 'K자형(양극화)'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전문가는 연내 한은이 경기위축을 감수하면서까지 금리인상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5일 '범금융 신년 인사회'에서 "지난해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부문간 격차가 큰 'K자형 회복' 때문에 체감경기와 괴리가 클 것"이라고 현 경제상황을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