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박희만 기자] 미국이 주요 반도체 생산국을 향해 ‘100% 관세’ 카드를 꺼내면서 정부와 반도체 업계가 대응 방안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미국발 관세 불확실성이 다시 고개를 드는 모습이다.
정부는 향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우리 기업에 가장 유리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방침이다
19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지난 16일(현지시간) 발언이 결정적으로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러트닉 장관은 마이크론의 신규 공장 착공식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싶은 모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100% 관세를 내거나,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주력 품목인 메모리 반도체를 콕 짚으면서 파장을 키웠다.
한국의 신속한 대미 반도체 투자가 없으면 ‘반도체 관세 최혜국 대우’ 합의를 깰 수 있다는 경고로도 여겨졌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18일 “지난해(11월)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명시된 대로 ‘불리하지 않은 대우 원칙’에 따라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의 발언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으로 수입된 뒤 제3국으로 재수출되는 반도체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포고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대만에서 생산돼 미국을 거쳐 중국으로 수출되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 ‘H200’과 AMD의 ‘MI325X’ 등이 관세 부과 대상에 포함됐다.
미국은 이 같은 25%의 반도체 관세를 ‘1단계’로 표현했고, 국가별로 추가 관세를 물릴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날 미 행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대만과 합의한 반도체 관세 면제 기준을 한국에도 적용하느냐’는 언론 물음에 “국가별로 별도의 합의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미국과 대만은 ‘반도체 포고령’ 서명 다음날인 지난 15일 관세 협상을 타결 짓고, 기존 20%였던 대만에 대한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대만 기업들과 정부가 미국에 총 5000억 달러(약 737조 7500억원)의 투자와 신용보증을 제공하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생산능력을 신설하는 대만 기업의 경우 해당 시설의 건설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생산능력의 2.5배 수입분까지 관세를 면제하고, 신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완공한 대만 기업의 경우 신규 생산능력의 1.5배까지 관세 없이 수입할 수 있도록 해주기로 했다.
한미 간 반도체 추가 협상이 실제 이어질 경우 대만과 미국 간 합의가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투자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라면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미 투자 확대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정부와 업계는 미국 백악관이 팩트시트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가까운 시일 내에 미국 내 제조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와 파생 제품 수입에 대해 보다 광범위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으며, 이에 상응하는 관세 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고 밝힌 점에 초점을 맞추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산업부는 “미국과 대만 간 합의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사실관계를 세밀하게 파악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조만간 관계 부처로부터 보고를 받고 기업 의견을 수렴하며 미국과의 추가 협상에 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하기 위해 19일 출국한 여한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행보가 반도체 관세 문제와 관련해 주목되고 있다.
여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수행해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반도체 관세 문제에 대한 의견 접근을 모색할 것으로 전해졌다.
여 본부장은 지난 17일 미국 출장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후 “미국의 1단계 관세 조치는 엔비디아와 AMD의 첨단 칩 두 종류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우리 기업들이 주로 수출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제외돼 있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2단계 조치가 언제, 어떤 형태로 나올지 알 수 없어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