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린란드 야심’에 ‘대서양 무역전쟁’ 위기 급속 고조

[서울이코노미뉴스 김준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병합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며 대유럽 관세 카드까지 꺼내들자 유럽연합(EU)이 159조원 규모의 보복관세를 다시 검토하는 등 대서양 무역전쟁 발발 위기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EU 내에서는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다음달부터 양측이 통상제재를 치고받는 악순환에 빠질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27개 회원국 대사가 참석한 가운데 긴급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EU가 검토 중인 맞대응 수단은 크게 두 갈래로 전해졌다.

하나는 지난해 미국·EU 무역 협상 과정에서 방침을 정했다가 보류한 930억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 패키지다.

한 EU 외교관은 미국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보류 중이던 보복 관세가 2월 6일 자로 자동 발효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EU는 작년에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해 항공기, 자동차, 버번위스키 등 미국의 주요 수출품에 보복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마련했다가 협상이 타결되자 시행을 접었다.

다른 하나는 ACI의 발동이다. 이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 시장, 공공 조달, 지식재산권 등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를 일컫는다. 2023년 도입됐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 하지만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금이야말로 이 무기를 사용할 때"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BC는 “아이러니하게도 당초 이 무기는 적대적인 외부 세력의 괴롭힘이나 간섭에 맞서 싸우기 위해 고안됐다. 그들(유럽)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유럽이 보복 조치 마련을 서두르는 것은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때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ACI를 검토하는 데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나토 회원국 대다수는 대화를 선호하고 있으며 다보스포럼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외교관들은 전했다.

한 EU 외교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은 명백한 강압이기 때문에 ACI 발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면서도 “2월 1일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설 의사가 있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주요 정상들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그린란드 및 북극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면서 “다보스에서 그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를 갖고 나토 동맹국의 집단 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고 총리실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그린란드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8개 국가를 상대로 다음달 1일부터 10%, 오는 6월 1일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은 지난해 EU, 영국과 각각 무역협정을 맺고 EU산 수입품에 15%, 영국산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여기에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응 방향은 정상급 회의에서 최종 조율될 것으로 보인다. EU는 오는 22일쯤 브뤼셀에서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과 그린란드 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 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다.

보복 관세든, ACI 발동이든 유럽이 실제 행동에 나서게 된다면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수십 년만의 최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유럽 지도자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지만 유럽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있다.

유럽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 속에서, 그리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미국의 안보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군사 충돌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무역전쟁 역시 EU가 대미 수출과 금융·디지털 서비스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쉽지 않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의 강경한 대응과 보복 조치는 유럽의 경제와 안보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