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강기용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한국 국회에서 한미 간 무역합의 이행에 필요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며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무역합의 이전 수준인 15%에서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밝혔다.
다만 인상 조치가 언제부터 적용될지, 구체적인 인상 배경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조기에 이행 단계로 끌어내기 위해 압박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캐나다를 방문 중인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조속히 미국에 보내 트럼프 행정부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SNS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한국 입법부가 한국과 미국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해 자동차, 목재, 의약품에 대한 관세와 기타 모든 상호관세(국가별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각 합의마다 우리는 합의된 거래에 따라 관세를 신속하게 인하해왔다. 당연히 우리는 교역 상대국들도 동일하게 행동할 것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재명 대통령과 나는 2025년 7월 30일에 양국을 위한 위대한 합의를 했으며, 내가 2025년 10월 29일 한국에 있을 때 그런 조건을 재확인했다. 왜 한국 입법부는 합의를 승인하지 않는가"라고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국 국회의 승인은 미국에 약속한 투자를 이행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대미투자특별법)의 입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한국이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 대미 투자를 하는 조건으로 미국은 한국산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인하하는 내용의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MOU 이행을 위한 법안이 한국 국회에 제출되는 그 달의 1일 자로 관세 인하 조치를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작년 11월 26일 국회에 대미투자특별법을 발의했고, 미국도 작년 12월 4일 관보 게재와 함께 한국산 자동차 관세를 15%로 소급 인하했는데 아직 한국 국회에서 법안은 통과되지 않은 상태다.
특별법은 한미전략투자기금 조성과 한미전략투자 공사 설치 등 대미 투자를 이행하는 데 필요한 법·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양국 합의 사항에는 '법안 제출'과 그에 따른 관세 인하 조치만 명시돼 있을 뿐, '법안 통과' 시한이나 지연에 따른 불이익과 관련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은 일차적으로 대미 투자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지 않는 듯한 한국 내 기류에 대한 불만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미투자특별법의 국회 논의는 더딘 상태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양국 간 양해각서를 한국에만 구속력이 있는 국내법으로 발의한 것은 문제라면서 국회 비준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간 무역 합의대로라면 한국은 올해 안에 200억달러 상한의 대미 투자를 해야 한다.
미국이 한국의 투자 이행을 압박한 배경에는 최근 원화 약세 상황에서 한국이 200억달러를 투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 정부가 환율 때문에 올해 약속한 200억달러 대미 투자를 지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후 구윤철 재정경제부 장관이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투자를 지연하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면서도 투자 프로젝트 선정에 시간이 오래 걸려 올해 상반기에는 투자 집행이 어렵다고 밝혔다.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 한국 정부와 국회를 향해 나온 불만의 목소리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허위조작정보 근절법(개정 정보통신망법)' 통과에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고, 미 의회에서는 쿠팡 정보유출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 대응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난 23일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묻기도 했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발언 배경을 분석하면서 대응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김용범 정책실장 주재로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대책회의를 가졌다. 청와대는 "미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통보나 세부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방위산업 협력 강화 논의를 위해 강훈석 청와대 비서실장과 캐나다를 방문 중인 김정관 장관은 조만간 미국으로 이동해 러트닉 상무장관과 관련 내용을 협의할 계획이다.
관세인하 및 대미투자를 축으로 하는 무역합의와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민간용 우라늄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허용 등 다른 한미 합의들이 상호 연계돼 있다고 봐야 하는 만큼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의 이번 발표가 단순히 무역의 영역에 국한되는 것으로 간주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미관계의 큰 틀에서 풀어가야 할 사안일 수 있는 만큼 김정관 산업장관의 방미 협의 상황에 따라, 양국 정부 고위급 정무라인 인사 간의 후속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부과한 상호관세 정책의 위법성에 대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시점에 관세 문제를 다시 꺼내 든 것도 논란의 소지가 있다.
1·2심에서처럼 대법원도 '위법'하다고 판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에 부과한 상호관세나 이번 관세 조치 역시 사실상 무효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