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HBF 표준화 착수…AI 메모리 주도권 바짝 죈다

[서울이코노미뉴스 박희만 기자] 지난해 3분기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오른 데 이어, 낸드플래시 기반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 ‘HBF(High Bandwidth Flash)’ 표준화에 착수하며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낸드를 수직 적층해 용량을 극대화한 HBF 생태계를 구축, 인공지능(AI) 메모리 전 영역에서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HBF는 이른바 ‘고대역폭플래시’로, 초고속 연산에 특화된 HBM과 대용량 저장장치인 SSD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메모리 계층이다.

여러 개의 D램을 적층하는 HBM과 구조적으로 유사하지만, 낸드플래시를 활용해 HBM의 고질적 한계로 지적돼 온 높은 비용과 발열 문제를 완화한 것이 특징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HBM과 HBF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종합 메모리 솔루션 역량이 향후 K-반도체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자산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KAIST 교수는 지난달 3일 서울 중구 프레스룸에서 열린 ‘HBF 연구 소개 및 기술개발 전략 설명회’에서 HBM을 GPU 옆의 ‘책꽂이’, HBF를 그 뒤를 받치는 ‘도서관’에 비유했다.

그는 “속도를 결정하는 것이 HBM이라면, 용량을 책임지는 것은 HBF”라며 “AI가 고도화될수록 방대한 과거 데이터를 불러오는 콜드 메모리 영역에서 HBF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 1세대 HBF는 16층 낸드 적층을 통해 512GB 용량을 구현할 수 있다. 이를 GPU 1개당 8개 연결할 경우, 최대 4TB의 초대용량 구성이 가능하다.

업계는 AI 추론시장의 확대와 함께 오는 2030년 전후로 HBF를 포함한 복합 메모리 수요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월29일 열린 2025년 4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HBF를 통한 AI 서버시장 대응방침을 공식화했다.

송창석 SK하이닉스 낸드마케팅 담당은 “HBM의 확장개념인 HBF 기술을 구체화하고, KV 캐시 및 다양한 데이터를 오프로딩하려는 고객 수요에 대응하겠다”며 “데이터센터의 전력 및 공간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초고용량 엔터프라이즈 SSD 라인업을 강화해 변화하는 AI 서버 시장에 입체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표준화 선점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5일 미국 샌디스크 본사에서 ‘HBF 스펙 표준화 컨소시엄 킥오프’ 행사를 열고 차세대 메모리 솔루션 HBF의 글로벌 표준화 전략을 공개했다.

양사는 세계 최대 데이터센터 기술 협력체인 OCP(Open Compute Project) 산하에 전담 워크스트림을 구성해 기술 사양을 정립할 계획이다.

이는 낸드 시장 2위권 업체간 협력을 통해 시장 판도변화를 꾀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양사는 HBM과 낸드 분야에서 축적한 설계·패키징 기술을 바탕으로 제품화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상용화 목표시점은 내년이다.

안현 SK하이닉스 개발총괄(CDO) 사장은 “AI 인프라 경쟁의 핵심은 개별 기술 성능을 넘어 생태계 전체를 최적화하는 데 있다”며 “HBF 표준화를 통해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AI 시대에 최적화된 메모리 아키텍처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4분기 D램 점유율 36%로 1위 자리를 탈환한 삼성전자도 대응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z낸드’ 등 차세대 기술을 앞세워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플래시 수요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이에 따라 AI 메모리 주도권을 둘러싼 양사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