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윤석현 기자] 중동 사태의 악화로 9일 금융 및 외환시장이 '트리플 악재'에 크게 흔들렸다.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해 국내 휘발유값 상승과 환율 1,500선 육박, 주가 폭락의 악순환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중동상황과 관련해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어 유가와 환율 등 경제상황을 점검하고 범부처 대응책을 논의했다.
◇코스피,유가 폭등속 6% 급락해 5,200대…코스닥도 내려
이란 사태로 국제유가가 폭등한 가운데 코스피가 이날 6% 급락하며 5,200대로 마감했다.
이날 지수는 전장 대비 333.00포인트(5.96%) 내린 5,251.87에 장을 마쳤다. 지수는 전장 대비 319.50포인트(5.72%) 내린 5,265.37로 장을 시작해 낙폭을 키웠다.
코스닥 지수는 52.39포인트(4.54%) 내린 1,102.28에 장을 마쳤다.
이날 급락장에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에 대한 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매도 사이드카)가 지난 4일에 이어 3거래일 만에 발동되기도 했다.
장중 한때 코스피가 8% 넘게 폭락하면서 시장의 거래를 20분간 중단시키는 '서킷브레이커'도 3거래일 만에 발동했다.
이는 이달에만 두 번째 발동된 것으로, 코스피 시장에서 한 달 내 서킷브레이커가 재발동된 상황은 코로나19 팬데믹(2020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환율, 19.1원 급등한 1,495.5원…장중 최고 1,499.2원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490원대로 올라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9.1원 오른 1,495.5원으로 집계됐다.
주간거래 종가 기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12일(1,496.5원) 이후 가장 높다.
대미 관세 충격으로 환율이 크게 올랐던 지난해 4월9일(1,484.1원) 종가를 넘어섰다.
이날 환율은 16.6원 급등한 1,493.0원으로 출발해 오전 10시22분께 1,499.2원까지 올라 1,500원에 바짝 다가섰다.
오후에 유가와 달러인덱스 강세가 다소 주춤하면서 환율도 1,484.5원까지 내렸으나 마감 무렵엔 다시 상승폭을 키웠다.
주간거래 장중 고가 기준으로도 금융위기(2009년 3월12일·장중 최고 1,500.0원) 이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직전 기록은 지난해 4월9일의 1,487.6원이다.
야간 거래에서는 지난 4일(장중 최고 1,506.5원) 1,500원대를 찍었다. 다만, 야간 거래는 거래량이 많지 않아 변동폭이 크다.
위험회피 심리확산에 달러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인덱스는 0.34% 오른 99.295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이 이날 3조2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한 것도 환율상승 요인으로 작용했다.
달러 강세 등의 영향으로 엔화는 약세 흐름을 보였다. 엔·달러 환율은 0.39% 158.513엔이다.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42.70원으로 전 거래일 오후 3시30분 기준가보다 7.83원 올랐다.
◇전국 평균 휘발윳값 1900원 돌파…경유 1924원
전국 주유소의 평균 휘발유 가격이 처음으로 1900원을 넘어섰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00.7원으로 전날보다 5.3원 올랐다.
경유 가격은 같은 시각 1923.8원으로 6.1원 상승했다. 경유 가격은 여전히 휘발유 가격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서울지역 기름값도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949.0원으로 전날보다 3.3원 올랐다.
서울 평균 경유 가격은 4.2원 상승한 1971.4원으로 집계됐다.
이날 한국시간 오전 7시26분 기준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하면서 오후 들어 기름값 상승세가 다소 가팔라졌다.
통상 국제유가 변동은 약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정유업계에서는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분을 공급가격에 모두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앞서 일부 주유소들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기름값을 올려 논란이 됐다.
당분간 국내 유가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는 중동 상황과 관련한 '경제 및 물가 상황 점검 비상경제점검회의'를 열고 유가 등 변동상황 점검에 나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제품에 대해선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 한다"며 "에너지 가격상승으로 인한 물가부담이 서민에게 가장 먼저, 또 가장 크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국제유가 배덜당 110달러 안팍팎…이달말 150달러 전망도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한국시간 이날 오전 7시26분 기준 전장 대비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WTI 선물가격은 상승세를 계속해 이날 오전 11시33분 119.48달러까지 올랐다가 오후 2시50분 현재 109.08달러로 내려온 상태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이후 처음이다.
국제유가의 기준인 브렌트유 선물도 한국시간 이날 오전 7시26분 기준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14.85% 오른 배럴당 107.54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역시 이날 오전 11시33분 119.50달러까지 급등했다가 오후 2시50분 현재 111.59달러를 나타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브렌트유 선물가격이 이날 112.17달러 이상을 유지할 경우, 해당 선물이 거래를 시작한 1988년 6월이래 역대 최대의 일일상승폭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유가는 이날 100달러를 돌파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루스소셜을 통해 "유가는 미국과 세계, 안전과 평화를 위한 아주 작은 대가"라고 밝힌 뒤 추가로 상승하는 모습이었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막히면서 주요 산유국들의 저장시설이 빠르게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고, 이에 따라 감산으로 이어지는 등 시장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원유 물류는 사실상 마비상태다. 블룸버그는 최근 며칠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이란관련 유조선들과 중국 소유로 알려진 벌크선 두 척뿐이었다고 보도했다.
에너지 컨설팅회사 크플러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유조선 통행량은 지난달 28일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후 일주일 만에 90% 줄었다.
선박 피해도 잇따르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일주일간 호르무즈 해협에서 총 9건의 선박 공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사망자도 7명에 이른다.
호르무즈를 통한 수출길이 막히면서 저장공간이 다 찬 중동 산유국들은 고육지책으로 감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소식통을 인용, 이라크 주요 남부유전에서 생산되는 원유량이 이전의 3분의 1 수준인 하루 130만배럴로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의 원유 수출량도 급감했다. 지난달 333만 배럴 수준이던 하루 수출량도 이날 80만 배럴로 줄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유조선 두 척만 선적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라크는 현지시간으로 오후 8시께에는 수출이 완전히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JP모건체이스의 나타샤 카네바 애널리스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문자로 기록된 역사 전체를 봐도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봉쇄된 적은 없었다"며
"이번 사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감히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 현실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투자자 노트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국제유가가 이달 말엔 배럴당 150달러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해협의 석유 생산량이 3월 내내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특히 정제유 가격을 비롯한 원유가격은 2008년과 2022년 최고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클레이턴 시글 선임연구원은 "시장이 트럼프 행정부에 부여했던 유예기간이 지난 주말로 끝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하루 2000만 배럴의 공급부족이 전세계 원유시장의 균형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고,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매우 가능성 낮은 전망"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