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박희만 기자]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순현금 100조원 확보를 목표로 내걸었다.
대규모 투자가 요구되는 메모리 산업환경 속에서 글로벌 최상위 수준의 재무체력을 갖추겠다는 의지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25일 경기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안정적인 투자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순현금 100조원 이상을 확보하겠다”며 “AI 시대 글로벌 고객과 함께 하기 위해 한 단계 강화된 재무기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SK하이닉스의 순현금은 지난해 말 기준 약 12조7000억원 수준이다. 목표치와 비교하면 약 8배 이상 확대가 필요한 셈이다.
이는 약 92조원 수준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와 유사한 재무여력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곽노정 사장은 이러한 목표의 배경으로 AI 확산에 따른 구조적 수요 증가를 꼽았다.
그는 “AI 기술 고도화와 컴퓨팅 인프라 투자확대에 따라 메모리 수요는 중장기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이 흐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투자기반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한 AI 반도체 수요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투자확대와 맞물려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사업전략 측면에서는 기존 계획을 유지하면서도 제품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한다는 방침이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3E를 중심으로 하반기부터 HBM4 출하를 확대할 계획이며, 차세대 제품인 HBM4E는 연내 샘플을 선보일 예정이다.
DDR5와 소캠 등 범용 및 특화 메모리 제품군도 고객 수요에 맞춰 비중을 조정한다.
자본시장 전략도 병행된다. 회사는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추진 중이며,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공모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 제출한 상태다.
곽 사장은 “구체적인 발행 규모와 방식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주주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사업 확장도 본격화한다. SK하이닉스는 미국에 ‘AI 컴퍼니(가칭)’ 설립을 추진하며, 관련역량을 보유한 기업 인수 등을 통해 사업기회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단순 메모리 공급을 넘어 AI 생태계 전반으로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목표가 단순한 재무계획을 넘어 ‘투자 체력 경쟁’의 선언으로 보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HBM을 중심으로 한 AI 메모리 시장은 이미 공급능력과 투자규모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면”이라며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와 유사한 수준의 현금여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시장 지배력 확대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단기간내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 비용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에서 현금 축적과 투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익성 개선과 고부가 제품 비중확대가 병행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향후 관건은 AI 메모리 시장 성장속도와 SK하이닉스의 실행력이다. HBM 시장에서 이미 경쟁력을 입증한 만큼, 안정적인 재무기반까지 확보할 경우 글로벌 반도체 시장 내 입지는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