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이전 '해양 클러스터' 조성…스마트 친환경 항만 인프라 필요
경제성 회의적 시각 여전…지정학적 리스크 속 전략적 가치 주목
[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세계 최초로 북극항로를 운항한 컨테이너선은 덴마크 머스크사의 벤타 머스크호였다.
이 배는 2018년 8월 28일 부산에서 출항했다. 세계 최초의 북극항로 컨테이너선 시범 운항 출발지가 부산이었던 것이다.
이는 부산항이 북극항로의 ‘퍼스트 앤 라스트 포트'(First and Last Port)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퍼스트 앤 라스트 포트는 특정 항로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인 항만을 가리키는 용어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 거리 뱃길인 북극항로가 활성화하면 그 길목에 있는 부산항은 새로운 해상 물류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으로 기대된다.
22일에는 부산에 거점을 둔 국내 선사 팬스타라인닷컴의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 시범 운항에 나선다. 정부는 이를 시작으로 2030년 정기 서비스 항로를 개설할 계획이다.
부산의 항만 인프라를 토대로 북극항로를 선점함으로써 ‘글로벌 해양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현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12월 해양수산부를 부산으로 이전한 것은 이 같은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한 첫 포석이었다. 해수부를 중심으로 한 범정부 조직인 북극항로 추진 본부도 출범했다. 2028년 3월에는 해사국제상사법원이 부산에 문을 연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20일 부산 북항에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투입될 극지 운항에 적합한 내빙 성능을 갖춘 2천800TEU급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정박해 있다. 2026.8.20
에이치라인해운을 시작으로 SK해운, HMM, 흥아해운도 부산으로 이전하기로 해 해운기업 집적화도 진행 중이다. 해수부는 금융위원회를 비롯한 관계 기관과 동남권투자공사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해양 분야 최대 규모이자 최고위급 국제회의인 유엔 해양총회의 2028년 부산 개최는 글로벌 해양도시로서 부산의 위상을 굳히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행정과 사법, 기업, 금융을 아우르는 해양 클러스터를 구축해 부산을 중심으로 남부 해양수도권을 육성한다는 게 정부의 청사진이다. 이를 통해 이 지역에 새로운 성장 엔진을 구축함으로써 수도권 일극 체제를 허물고 지역 균형 발전을 이룬다는 복안이다.
정부는 지난 5월 북극항로 활성화와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해양 경제 거점으로 육성하는 내용을 담은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 방향’을 발표했고,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한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 실행계획’도 마련할 예정이다.
북극항로 활성화와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부산항이 글로벌 환적 허브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항만 인프라를 고도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화물 환적을 넘어 항만 서비스, 에너지, 금융 등 고부가가치 산업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피지컬 인공지능(AI) 도입을 포함한 ‘스마트 항만’ 구축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시급하다. 본격적인 북극항로 운항에 대비해 액화천연가스(LNG)와 암모니아 등 상대적으로 친환경적인 연료 공급 인프라도 필요하다.
나아가 부산신항과 철도망, 가덕도 신공항을 연결하는 동남권 ‘트라이 포트'(Tri-Port)를 완성하면 북극항로와 연계한 복합 물류 허브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구상이다.
(부산=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이수호 해양수산부 북극항로추진본부장이 20일 해수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어 오는 22일 시작하는 북극항로 시범 운항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2026.8.20
북극항로 활성화와 남부 해양수도권 육성은 연계돼 있지만, 북극항로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만만치 않다.
아직은 항로 운항이 여름철(6∼10월)로 제한되는 데다 대규모 컨테이너선 운항도 쉽지 않아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쇄빙선이나 내빙선 건조 비용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북극항로가 기존 항로를 대체하는 항로로 자리 잡기보다는 짧은 운항 거리를 활용한 급행 운송 노선과 같은 보완재 역할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기도 한다.
북극이 미국과 러시아, 중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새로운 갈등 무대로 떠오른 지정학적 현실도 위험 요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올해 초 그린란드 병합 의사를 밝힌 것은 북극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될 갈등의 예고편으로 받아들여졌다.
일각에서는 북극항로의 경제적 가치보다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는 최근 한국의 북극항로 진출을 ‘북극 이니셔티브’로 표현하며 지정학적 중요성을 더해 가는 북극에 발을 들여놓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동북아시아에서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러시아의 대립 구도가 고착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가 밀착하는 국면에서 한국이 러시아 북쪽 연안을 지나 유럽으로 가는 북극항로에 진출하는 것은 기존 대립 구도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북극항로(북동항로)와 기존 항로의 거리 비교. 구체적인 수치는 측량 방법 등에 따라 차이가 있다.
X(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