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코노미뉴스 정진교 기자] ‘고환율·저성장’ 속에서 지난해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년 만에 감소하며 3만6천달러대를 겨우 유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의 지난 9일 최신 전망을 반영한 추산으로, 저성장과 고환율에 후퇴한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앞세운 대만은 22년 만에 한국을 추월하며 격차를 벌리고 있다.
11일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6107달러로 전년(3만6223달러)보다 0.3%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1인당 GDP가 뒷걸음질 친 것은 팬데믹 직후인 2022년 이후 3년 만이다.
1인당 GDP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원화 가치의 급락이다.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422.16원을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1400원대를 돌파했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의 종전 최고치(1394.97원)마저 넘어선 역대 최고치다.
1인당 GDP는 정부가 지난 9일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에서 지난해 경상성장률을 3.8%로 전망한 것을 토대로 역산해 산출됐다.
정부가 발표하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 담긴 2024년 경상GDP(2556조8574억원)에 3.8% 성장률을 적용하면 지난해 경상GDP는 2654조180억원이 된다.
한국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에도 원화 가치만 계속 하락
이 수치를 작년 평균 환율(1422.16원)로 달러화로 환산하고, 통계청 장래인구추계상 총인구(5168만4564명)로 나누면 1인당 GDP 3만6107달러가 도출된다.
실질 GDP 성장률이 1.0%라는 역대급 저성장에 머문 데다, 기록적인 원화 약세가 달러 환산 성적표를 깎아먹은 결과다.
지난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화 지수(DXY)는 104.17에서 100.81로 하락하며 전 세계적인 ‘약달러’ 흐름을 보였다.
이에 따라 일본 엔화(1.3%), 유로화(4.3%), 영국 파운드화(3.1%) 등 주요국 통화 가치는 일제히 상승했다. 한국과 경쟁 관계인 대만 달러 역시 2.9% 가치가 올랐다.
반면 원화만은 반대로 움직였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에도 원화 가치만 계속 하락하면서 한국 경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외톨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한 환율 쇼크는 국가 순위 역전으로 이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대만 통계청에 따르면 대만의 지난해 1인당 GDP는 3만8748달러로 한국을 제쳤다. 한국이 2003년 대만을 앞선 이후 22년 만에 다시 밑으로 내려앉은 것이다. 대만과의 격차는 2641달러에 이른다.
대만은 AI 수혜 업고 '고공행진'…1인당 GDP 올해 4만 달러 돌파 예약
가장 큰 원인은 인공지능(AI) 붐을 바탕으로 한 반도체 수출 호조 덕분으로 파악된다. 대만의 대표 기업인 TSMC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로, 엔비디아 등에 납품하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 통계청은 올해 자국의 1인당 GDP가 4만921달러로, 한국보다 먼저 4만달러를 첫 돌파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3년 3만2444달러, 2024년 3만4238달러, 2025년 3만8748달러에 이어 4년 연속 증가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은 국력을 반영하는 거울”이라며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대만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한때 앞질렀던 일본에도 다시 추월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구조적 성장 동력 확보 없이는 고환율·저성장 늪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편 노무라는 지난 9일 아시아 경제 월간 보고서에서 "지난 2024년 AI 관련 상품이 대만 전체 상품 수출의 65% 이상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이어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 AI 설비 투자 붐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